일본, 대만, 중국 등 해외 각지에서『세월의 돌』과 『룬의 아이들』을 히트시켜 한국의 대표하는 장르문학가로 손꼽히는 전민희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대중적인 코드를 두루 갖췄다는 평을 받고 있는 『태양의 탑』은 이야기의 힘과 아름다운 문장의 감동을 믿는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특히 『태양의 탑』은 작가의 출세작 『세월의 돌』과 함께 <아룬드 연대기>의 한 축을 이루는 작품으로 책력에서 별자리의 기원까지 완벽하게 구성된 <아룬드 연대기>의 세계를 사랑하는 열혈 독자들은 『태양의 탑』의 출간을 10년 동안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정도이다.
[책 속으로]
“넌 내 피와 살을 먹여 키운 그림자니까.”
일츠에게 자신은 다른 의견을 말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다른 길로 가선 안 되는 존재였다. 지금까지 둘이 형제처럼 지낸 건 둘의 뜻이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츠의 ‘내 세계’에서 나가려 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네 세계의…… 무엇이었지?”
“거울.”
일츠는 두 팔을 벌렸다. 매달린 채 굽어보는 키릴로차의 거울상인 양 못 박힌 모습을 했다.
“어머니께서 내 방에 놓아주신 거울이 너잖아. 처음부터 알았던 건 아니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비치더라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어. 난 내 얼굴을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거든. 평소에도 거울은 잘 안 보잖아. 언젠가 어머니께선 네게 비친 나를 잘 보라고 하셨지만 난 그러지 않아도 나를 잘 알아.”
키릴로차가 깨문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한 줄기가 입가를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일츠가 그를 가만히 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젠 내 얼굴이 비치지 않네.”— 본문 중에서